무계획으로 떠난 30일 미국 로드트립, 그래도 어떻게든 됩니다

올여름, 우리 가족은 30일 동안 8,339마일을 달렸습니다. 6월 6일 피츠버그를 출발해 서쪽 끝까지 갔다가, 다시 동쪽으로 돌아와 7월 4일 워싱턴 DC에서 독립기념일 불꽃놀이를 보고, 다음 날 집에 도착했습니다.

거창하게 들리지만 사실 출발할 때 정해진 건 거의 없었습니다. 예약해 둔 호텔은 처음 며칠치와 DC뿐이었고, 나머지는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떠났습니다. 앞으로 이 여행을 날짜와 장소별로 하나씩 정리해 올릴 예정인데, 그 첫 글로 여행이 어떻게 시작됐고 어떤 길로 다녔는지를 먼저 풀어놓으려 합니다.

여행이 이렇게 된 이유

시작은 단순했습니다. 미국 초등학교 여름방학은 꽤 길어서 아이들과 집에만 있기가 좀 그랬고, "그냥 차 타고 미국 횡단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이 가볍게 떠올랐습니다. 여행이야 자주 다녔지만 이렇게 계획 없이 떠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여행의 뼈대를 만들어 준 건 뜻밖에도 미국 건국 250주년이었습니다. 올해 독립기념일은 DC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에 호텔부터 덜컥 예약해 버렸고, 그 날짜에 맞추다 보니 6월 6일에 서쪽으로 출발해 DC를 찍고 돌아오는 30일 코스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습니다.

여행 며칠 전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인이 이것저것 짐을 넘겨주고 갔는데, 그중에 텐트와 침낭 같은 캠핑 장비가 있었습니다. 그걸 받고 나서 이번 여행에 캠핑을 끼워 넣었어요. 덕분에 차에 짐이 넘쳐서 고생은 했지만, 지나고 보니 우리 여행을 훨씬 풍성하게 만들어 준 계기였습니다.

계획은 없었지만 경로는 있었다

들르고 싶은 곳의 큰 그림은 있었습니다. 피츠버그에서 서쪽으로 계속 이동하다가 서부의 국립공원들을 돌고, 요세미티에서 다시 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집을 잠깐 들른 뒤 DC로 가는 흐름이었어요. 이 뼈대를 가지고 ChatGPT와 Claude에게 계획을 짜달라고 했더니, 중요한 스팟을 빠뜨리지 않은 초안을 금방 얻을 수 있었습니다.

대략적인 경로는 이랬습니다.

서쪽으로 (남부 경로) 피츠버그 → 신시내티 → 멤피스 → 오클라호마시티 → 산타페 → 아치스 → 모뉴먼트 밸리 → 앤텔로프 캐니언 → 글렌 캐니언 → 호스슈 벤드 → 그랜드 캐니언 → 윌리엄스 → 레드 캐니언 → 브라이스 캐니언 → 자이언 캐니언 → 레이크 미드 → 라스베이거스 → 세쿼이아 → 요세미티

동쪽으로 (북부 경로) 요세미티 → 리노 → 보네빌 소금평원 → 그랜드 티턴 → 옐로스톤 → 빅혼 캐니언 → 데블스 캐니언 → 데블스 타워 → 주얼 케이브 → 윈드 케이브 → 러시모어 → 배드랜드 → 인디애나 듄즈 → 피츠버그(집) → 워싱턴 DC → 피츠버그

국립공원과 국립기념물이 스무 곳 가까이 들어 있는데, 출발할 때 이 목록이 다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절반쯤은 가면서 추가된 곳들이에요.

여행이 막 더워지기 시작하는 6월이라, 서부로 갈 때는 조금 남쪽 경로를, 동부로 돌아올 때는 북쪽 경로를 탔습니다. 같은 길을 두 번 안 지나니 볼거리도 두 배였어요. 중간에 너무 힘들면 돌아올 생각이었기 때문에, 처음 며칠만 숙소를 잡고 이후엔 여행 중에 다음 숙소를 예약하는 방식으로 다녔습니다.

출발 전에 정말 결정해야 할 두 가지

돌이켜 보면 출발 전에 진지하게 정해야 할 건 딱 두 가지였습니다. 대략적인 경로, 그리고 캠핑을 할지 말지.

캠핑은 짐의 양을 완전히 바꿔 놓습니다. 캠핑 장비가 없었다면 짐을 훨씬 줄일 수 있었을 거예요. 대신 얻는 게 큽니다. 호텔에 비해 가격이 훨씬 싸고, 캠핑장마다 분위기가 다 달라서 그 자체로 여행이 되고, 무엇보다 국립공원 안 캠핑장에서 자면 눈 뜨자마자 국립공원입니다. 곰이 나오는 공원에서는 음식과 짐 관리가 조금 까다로워지지만(모든 공원에 곰이 있는 건 아닙니다) 몇 번 해보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캠핑장 이야기는 따로 한 편에 자세히 정리하겠습니다.

가는 길도 여행이 되다, 루트 66

여행 중에 새로 알게 되어 경로에 끼워 넣은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루트 66입니다. 시카고에서 로스앤젤레스까지 이어지던 옛 국도로, 1926년에 지정되어 올해가 딱 100주년이었습니다. 지금은 대부분 주간고속도로로 대체됐지만 옛길 구간과 그 시절 간판, 모텔, 주유소가 곳곳에 남아 있어요.

루트 66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꿔 놓은 장소들에 들러 사진을 잔뜩 찍었는데, 목적지 사이의 이동 시간이 그냥 견디는 시간이 아니라 여행의 일부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무계획 여행의 든든한 조력자, AI

계획 없이 떠난 여행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AI였습니다. 경로 초안도 받았고, 식당도 매번 추천받아서 갔는데 대부분 만족스러웠어요. 낯선 메뉴 앞에서 뭘 시킬지도 도움을 받았습니다. 여행을 준비 중이라면 ChatGPT나 Claude 같은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시길 권합니다.

앞으로 올릴 글들

이 여행이 가족 모두에게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입니다. 30일을 다녀오고 몇 주 쉰 뒤에 또 2주짜리 로드트립을 다녀왔을 정도니까요.

다음 글에서는 출발 전에 챙겨야 할 것들을 체크리스트로 정리하고, 그다음부터는 날짜와 장소별로 하나씩 올리겠습니다. "이렇게 계획을 안 세우고 떠나도 어떻게든 되는구나"라는 것, 그리고 "이건 이렇게 하면 더 좋다" 싶은 것들을 함께 나눌 생각입니다. 로드트립을 준비하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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