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처음 해본 캠핑,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고백부터 하자면, 이번 로드트립 전까지 저는 캠핑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한국에서는 형들 따라가서 다 차려놓은 자리에 앉아 있던 게 전부였고, 던지면 저절로 펴지는 원터치 텐트는 써봤어도 폴대 끼워서 세우는 큰 텐트는 쳐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집에 텐트도 없었고, 미국에 와서는 캠핑 장비라고 부를 만한 게 아예 없었습니다. 로드트립 계획에 캠핑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그런데 출발을 며칠 앞두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지인이 짐을 정리하면서 캠핑 장비를 통째로 넘겨주고 갔습니다. 텐트, 텐트 안에 까는 돗자리, 의자, 접이식 식탁, 가스버너, 침낭, 베개, 랜턴, 모기 스프레이, 내열 장갑, 전기장판, 에어매트, 차량용 냉장고까지. 이걸 받고 "그럼 캠핑도 해볼까?" 했고, 캠핑은 그렇게 정말 갑자기 우리 여행에 들어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초보여도 됩니다. 이 글은 노하우라기보다 처음 해본 사람의 경험담이에요. 무엇이 필요했고 무엇이 필요 없었는지, 어떤 캠핑장이 좋았는지, 아이들은 어땠는지 있는 그대로 적어봅니다.

가져간 장비, 실제로 써보니

뭐가 필요한지 몰라서 거의 다 실었습니다. 가스버너만 뺐는데, 한여름에 서부 사막 지역을 다니는 거라 뜨거운 차 안에 가스통을 싣고 다니는 게 걱정스러웠거든요. 대신 전기 냄비를 하나 샀습니다. 30일 다녀보니 물건마다 쓸모가 확실히 갈렸습니다.

없으면 안 되는 것

텐트와 돗자리: 당연하지만 이게 있어야 잘 수 있습니다. 우리 텐트는 코스트코에서 파는 CORE 제품인데, 처음 쳐보는 저도 설명서 한 번 보고 세웠을 만큼 설치가 쉬웠어요. 어른 둘이면 설치도 해체도 금방입니다. 텐트에 조명이 내장돼 있어서 보조배터리를 꽂으면 실내등이 켜지는데, 이게 생각보다 큰 장점이었습니다. 돗자리는 텐트 안에 까는 건데, 바닥 냉기가 덜 올라오고 흙이나 모래가 몸이나 물건에 덜 묻어요. 신발 벗고 들어가는 우리 식 캠핑에는 이게 있어야 텐트 안이 방처럼 느껴집니다.

에어매트: 필수입니다. 캠핑장 사이트 중에는 바닥에 큰 돌이 박혀 있어서 다 치울 수 없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은 에어매트 없이는 텐트 안에서 앉아 있기도 힘들어요. 다만 받은 에어매트가 전기 펌프 방식이라 전기 없는 캠핑장에서는 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전기 없는 캠핑장에 가기 전에 월마트에 들러 USB-C 펌프 방식의 에어매트를 따로 샀어요. 국립공원 캠핑장은 전기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니, 매트에 바람을 어떻게 넣는지 꼭 확인하고 가세요.

침낭, 베개, 그리고 담요: 고지대에 있는 국립공원은 한여름에도 밤이 꽤 춥습니다. 그랜드 티턴에서는 6월 중순인데도 밤 기온이 0도 가까이 내려갔어요. 침낭에 담요나 이불을 하나 더 얹으면 훨씬 따뜻하게 잘 수 있고, 아이들은 긴팔 옷도 챙겨 주세요. 전기가 들어오는 사이트에서는 전기장판을 깔아주면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캠핑 의자, 인원수대로: 저녁에 불 피워놓고 네 가족이 둘러앉아 있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참 좋습니다. 그런데 의자는 꼭 사람 수만큼 있어야 해요. 앉아 있는 시간이 길지 않더라도 자기 의자가 없는 사람은 은근히 소외된 기분이 들거든요.

차량용 냉장고: 이번 여행의 일등공신이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시원한 물과 음료, 그리고 저녁에 맥주 한 잔. 무엇보다 우리는 여행 내내 김치를 들고 다녔는데, 냉장고 덕에 30일 동안 김치가 더 익지 않고 아삭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한국인에게는 이게 냉장고의 진짜 쓸모일지도 모릅니다.

보조배터리 2개: 하나는 자동차 점프 스타트 기능이 있는 모델로 샀습니다. 실제로 점프를 쓸 일은 없었지만 만약을 위한 보험이었고, 플래시가 달려 있어서 급할 때 조명으로도 썼어요. 에어매트 펌프, 휴대폰 충전, 텐트 조명까지 전기 없는 캠핑장에서 보조배터리는 없으면 안 되는 물건입니다. 전기 없는 캠핑장에 들어가기 전에는 꼭 꽉 채워두세요.

가져갔지만 거의 쓰지 않은 것

접이식 식탁: 거의 안 썼습니다. 캠핑장 사이트마다 피크닉 테이블이 있어서 쓸 일이 없었어요.

랜턴: 텐트에 조명이 있고, 밖에서는 모닥불이 있고, 밤에 화장실 갈 때는 휴대폰 플래시면 충분했습니다. 다음 캠핑 때는 챙기지 않았어요.

모기 스프레이: 들고는 다녔지만 한 번도 안 뿌렸어요. 우리 경로가 사막과 고원 위주라 모기가 거의 없었던 덕입니다. 다만 이건 지역과 계절 문제라, 호수나 강가 캠핑장, 습한 동부나 북부 공원에 간다면 챙기는 게 맞습니다.

애매했던 것

전기 냄비: 전기가 있는 사이트에서는 최고였습니다. 피크닉 테이블에서 라면 하나 끓여 먹으면 그날 저녁이 해결되니까요. 그런데 전기 없는 국립공원 캠핑장에서는 완전히 무용지물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 배고픈데 국립공원 밖 식당까지는 차로 한참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화장실에 갔더니 콘센트가 있고 누군가 휴대폰을 충전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우리도 전기 냄비에 라면을 넣고 화장실에서 끓였습니다. 권할 일은 아니지만요. 물론 먹는 건 텐트 앞 테이블에서 먹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긴데, 그때는 정말 맛있었어요.

이 일 이후로 가스버너를 두고 온 걸 후회했습니다. 전기 없는 캠핑장에서 뜨거운 걸 먹으려면 결국 버너예요.

캠핑장은 어디로 갈까

국립공원 캠핑장

가장 추천하고 싶은 곳입니다. 조용하고, 국립공원 안에서 잔다는 것 자체가 특별한 느낌이에요. 사슴이 텐트 옆을 지나가고, 아침에 눈 뜨면 바로 국립공원입니다. 가격도 호텔에 비해 훨씬 싸서, 우리가 묵은 곳들은 1박에 30~40달러 정도였어요.

예약은 recreation.gov에서 합니다. 유명한 곳은 몇 달 전에 이미 자리가 다 차기 때문에 미리 잡거나, 수시로 들어가서 취소된 자리가 있는지 봐야 해요. 우리도 중간에 빈자리가 나서 예약에 성공한 적이 있습니다.

알아두면 좋은 건 세 가지입니다.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 대부분이고, 인터넷도 거의 안 되며, 샤워장이나 화장실은 사설 캠핑장보다 소박합니다. 처음엔 전기 없는 게 불안했는데 막상 해보니 딱히 불편하지 않았어요. 보조배터리 하나면 됩니다.

곰이 있는 공원에서는

서부 사막 쪽 공원은 나무가 별로 없어서 곰 걱정이 없지만, 요세미티, 옐로스톤, 그랜드티턴 같은 곳은 곰이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캠핑장에는 사이트마다 철제 베어박스가 있는데, 냄새 나는 건 전부 여기 넣어야 해요. 음식만이 아니라 화장품, 치약, 약, 쓰레기까지. 이게 좀 번거로웠습니다.

공원마다 나오는 곰의 종류와 성격이 달라서 규칙도 다릅니다. 어떤 곳은 차 안에 두는 것도 금지고, 어떤 곳은 차 안이면 괜찮아요. 캠핑장 체크인할 때 안내를 잘 듣고 그대로 따르면 됩니다. 몇 번 해보면 금방 익숙해집니다.

KOA 같은 사설 캠핑장

국립공원 캠핑장 예약에 실패했다면 KOA 같은 사설 캠핑장이 좋은 대안입니다. 사이트 관리가 잘 되어 있고 전기와 물이 들어오는 곳이 많아요. 수영장과 놀이터가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합니다. 다만 대개 도로변에 있어서 밤에 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KOA Rewards 회원에 가입했는데, 연회비는 36달러 안팎(가입 시점에 따라 조금 다름)이고 매일 등록 요금의 10%를 할인해 줍니다. 1박에 40~100달러 정도 하니 서너 번만 자면 본전이에요. 미국과 캐나다에 500곳 넘게 있어서 국립공원 여행이 아니어도 집 근처에서 캠핑할 때 쓸 수 있습니다.

가장 좋았던 곳: 굴딩스 캠프그라운드

30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캠핑장은 모뉴먼트 밸리의 굴딩스 캠프그라운드(Goulding's Campground) 입니다. 텐트 밖으로 붉은 바위 기둥들이 보이는데, 다른 행성에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시설도 좋습니다. 사이트마다 전기와 물이 들어오고, 실내 수영장이 있어서 아이들이 좋아했어요. 매점이 잘 갖춰져 있고 주유소까지 캠프그라운드 안에 있어서 편리합니다. 전체적으로 관리가 잘 되어 있었어요. 모뉴먼트 밸리에 간다면 꼭 여기서 자보길 추천합니다.

아이들은 어땠나

걱정과 달리 아이들이 캠핑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비결은 미션이었어요. "나뭇가지 주워 와"라고 하면 신나서 한 아름씩 모아 오고, 그걸로 불을 피우면 신기해하면서 서로 더 주워 오겠다고 돌아다닙니다. 주니어 레인저 책자에 있는 자연 관찰 미션을 캠핑장에서 해보는 것도 좋아했고요. 자연 속에서 자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호텔과 캠핑, 어떻게 섞었나

30일을 다 캠핑한 건 아닙니다. 이동하는 날은 호텔, 국립공원에 머무는 날은 캠핑이 우선이었어요. 한 공원에 며칠 머물 때 공원 안에서 자면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공원이라, 차로 오가는 시간이 크게 줄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1박씩 캠핑했는데 이게 너무 힘들었습니다. 도착해서 텐트 치고, 다음 날 아침에 텐트 걷고, 또 이동하고. 그래서 여행 중반부터는 2박 캠핑을 기본으로 했어요. 그리고 2박 캠핑 뒤에는 호텔 1박을 넣어서 제대로 씻고 빨래를 했습니다. 이 리듬이 우리 가족한테는 잘 맞았어요.

비 예보가 있으면 캠핑을 안 했습니다. 젖은 텐트를 걷고 말릴 여유가 일정상 없었거든요. 옐로스톤 캠핑장을 예약해 뒀다가 비 소식에 취소하고 급히 호텔로 바꾼 적도 있습니다. 초보라면 비 오는 날은 피하는 게 좋습니다.

캠핑장 수도, 펌프질하지 마세요

캠핑장 수도는 펌프처럼 생겼습니다. 그런데 손잡이를 계속 올렸다 내렸다 하는 게 아니라, 한 번 끝까지 젖혀 놓고 몇 초 기다리면 물이 나와요. 겨울에 얼어서 터지지 않도록 밸브가 땅속 동결선(땅이 어는 깊이) 아래에 묻혀 있는 구조라, 물이 거기서부터 올라오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겁니다. 잠그면 관에 남은 물이 다시 땅속으로 빠지면서 꾸르륵 소리가 나는데 고장이 아닙니다. 처음에 이걸 몰라서 한참 펌프질을 했어요.

처음이어도 됩니다

우리도 캠핑은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장비는 지인에게 받은 거고요. 30일 여행 중 캠핑은 6일 정도였는데, 그 정도로도 충분히 재미있었고 그 뒤에 한 번 더 캠핑을 했습니다. 우리 같은 초보도 했으니 처음이라고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출발 전에는 캠핑을 일정에 넣을지 말지만 정하면 됩니다. 뭘 챙길지, 며칠을 잘지는 여행마다 다르고 가족마다 달라서 정해진 답이 없더라고요. 우리도 첫 밤을 자보고 나서야 뭐가 필요한지 알았습니다. 그러니 일단 해보자,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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